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산업이 갈림길에 섰다. 거대 시장,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기술 베끼기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추격 때문이다.
OLED 기술 보호, 적극적인 정책 지원 없인 허무하게 시장 주도권을 내줬던 LCD(액정표시장치) 산업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 또 베끼징"…OLED 기껏 키웠더니 기술 도용·정책 소외 '이중고'
"중국 업체들의 기술 도용을 대놓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답답할 따름입니다." (17일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차세대 동력으로 떠오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전선에 구멍이 뚫렸다. 십수년에 걸쳐 개발한 기술을 중국 등 후발업체들이 잇따라'카피'(복제)하면서다.
지난해에만 30조 원(247억 달러)의 수출을 담당한 디스플레이 산업이 뿌리채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정책 지원마저 시원찮다. 디스플레이산업이 메모리 반도체처럼 시장 주도권을 잡느냐,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LCD(액정표시장치)의 전철을 밟느냐의 골든타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격… 대응 어려워
업계에서는 해외업체들의 기술 무단 도용이 이미 위험수위에 달한 것으로 파악한다. 특히 폴더플폰 등장과 맞물려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모바일용 중소형 OLED 시장에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의 기술 베끼기가 노골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인사는 "폴더블폰 등 최근 논란이 된 중국의 베끼기 뒤에는 어김없이 플렉시블 기술을 포함한 OLED 기술 도용 문제가 있다고 보면 된다"며 "3~4년 전부터 문제가 됐던 인력 빼가기 등으로 공정 기술 모방이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라고 말했다.
무단 도용을 넘어 정보당국에 적발된 기술 유출 사례도 최근 5년 동안 수십 건에 달한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보당국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해외로 유출된 산업기술 112건, 핵심기술 35건 가운데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이 각각 17건, 5건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업계에서 공식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BOE, CSOT(차이나스타)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가 중국 정부에서 관리하는 기업이거나 우리 디스플레이 업계의 고객사와 계열사 관계인 경우가 많아 사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면 특허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기간이나 비용도 그렇고 중국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달부터 다이아몬드 픽셀, 에코스퀘어 OLED 등 원천기술 브랜드화에 나선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상표권 출원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기술 도용을 경고하고 나섰다는 얘기다.
中 점유율 5배 증가… 올해 27% 전망
전문가들은 기술 도용이 방치될 경우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의 미래비전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동안 OLED가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을 이끌 차세대 동력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압도적인 기술 경쟁력 덕분이었다.
TV용 대형 OLED는 LG디스플레이 (19,300원 상승 150모바일용 중소형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실상 전 세계 시장을 독점해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추격은 시장점유율에서도 확인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모바일용 OLE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6%를 넘어서면서 2018년(3%) 이후3년 새배 이상 늘었다.
무엇보다 시진핑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로 성장한 BOE의 성장세가 뚜렷하다. BOE의 OLED 점유율은 이 기간 1.2%에서 9.9%로 8배 이상 늘었다.
이 기간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은 96.7%에서 83.2%로 떨어졌다. 옴디아는 올해 중국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자국 스마트폰 시장 수요를 발판으로 27%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TV용 대형 OLED 시장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BOE와 CSOT가 내년 TV용 OLED 양산을 목표로 수조 원의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CSOT가 중형 OLED 주력인 일본의 JOLED와 2020년 자본제휴를 체결한 것을 두고도 대형 OLED 양산을 위한 사전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중구도·정책지원 속살 노출
국내 업계가 중국의 추격에 더 긴장하는 것은 LCD 선례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업체의 LCD 입지가 탄탄했지만 정부 지원과 자본력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시작되면서 주도권을 속절없이 뺏겼다.
DB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BOE와 CSOT·비전옥스·톈마 등 중국 4대 디스플레이 업체가 2012년부터 8년 동안 받은 정부 보조금 총액은5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이 기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순이익 합계20조 원의을 넘어선다. 2010년부터 10년 동안 BOE가 중국 정부에서 직접 받은 보조금만2조 원으로 이 기간 BOE 누적 순이익의 59% 수준이다.
한국 정부의 지원은 투자비의 최대 6% 세액공제와 인프라·수입장비·소재에 대한 일부 무관세가 사실상 전부다. 지난해 세제 지원을 골자로 추진한 국가전략기술 대상에도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만 포함되고 디스플레이는 제외됐다.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의 공약에서도 디스플레이 관련 정책은 찾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OLED 기술 유출을 두고 디스플레이 전·후방 산업의 역학구도와 한중 정치·경제구도, 정부 정책 지원 시스템의 속살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술 학회장)는시장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OLED 시장에서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기술 초격차 전략을 펼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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